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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IMF이후 우리 경제는 어떤 과정을 거쳐 다시 일어서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과정에 있었던 IT 버블과 '신지식인'으로 알려진 지식 기반 경제의 시작에 대해 알아보

    자.

     

    1)  IT 버블과 지식 기반 경제의 시작 

     

     

    1999년 개그맨 심형래 씨는 '용가리'라는 영화를 만들면서 신선한 충격을 던졌습니다. 그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우리나라 SF 영화 제작 기술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 덕

    분에 그는 '신지식인' 1호로 선정되게 됩니다. 당시 그가 남긴 말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니까 못 하는 겁니다. " 이 신지식인 제도는 당시 김대중 정부가 

    광복 50주년을 맞아 추진한 '제2의 건국'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이는 스펙에 관계없이 창의

    적이고 진취적인 아이디어로 가치를 창출한 인재를 선정하는 제도입니다. 기존의 인재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재를 발굴해 내어 신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사람들 중에는 정말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꿀 만한 인재, 자기 분

    야에서 새로운 발상으로 혁신을 일으킨 인재들이 많았습니다. 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우리나라는 IT버블이 시작되면서 정보통신 산업을 중심으로 벤처기업 붐이

    한창이었는데 '저게 과연 사업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당시는 사업계획서

    하나 그럴듯하게 쓰면 벤처 투자자가 줄을 서는 분위기였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습니다. 막대

    한 투자금을 받았으면 부가가치가 있는 사업을 구상하고 발굴했다면 의미가 있었을 테지만 당시

    투자받은 벤처 사업가들 중에는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2) IT 버블의 전개과정

     

     

     

    김대중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두 가지 짐을 떠안고 출발해야 했습니다. 하나는 IT 버블이 동반한

    주식시장 거품이었고, 또 하나는 '묻지 마' 신용카드 발급이 가져온 소비 거품입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와 구제금융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고 시장을 개방해서 자

    본시장을 활성화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넘어서 더 나아가기 위해서 '지식 기반 경제'를 택했

    습니다. 이를 위해 당시 5년간 벤처기업 2만 개의 창업을 지원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창업벤처

    기업은 채택이 되면 3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코스닥에 상장되면 5년간 법인세 

    를 50% 감면해 주는 혜택도 약속했습니다. 이로 인해 당시 테헤란로는 벤처기업들이 빠르게 늘

    어났고 '테헤란 벨리'로 불렸습니다. 이런 붐을 타고 당시 코스닥은 코스피의 두 배나 되는 2925

    포인트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당시 유명했던 벤처기업으로 '골드뱅크' 그리고 '다이얼패드' 그

    리고 '디지털 조선'이 있습니다. 당시 골드뱅크 같은 경우 '액면가'의 340배인 31만 원까지 오르기

    도 했습니다. 이들 벤처기업들의 대표들은 아이디어 하나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기업들은 '분식회계'같은 민낯이 속속 드러나면서 주가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법정에서 실형을 받게 됩니다. 여러 가지 게이트가 터지고 온갖

    부정부패가 드러나면서 그들은 몰락하게 됩니다. 그들이 투자자를 모으는 방법은 가히 희대의

    사기극 같은 수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건전한 수익구조와 수익모델개발에 집중해

    꾸준히 발전해 온 IT기업들도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NAVER, 카카오, 셀트리온과 같은 IT 재벌

    들입니다. 이들은 지금은 주식순위 탑 10에 모두 랭크되어 있는 견실한 기업이 되었습니다. 

     

     

    3)   소비거품이 낳은 수많은 신용불량자

     

     

    부자의 꿈이 끓어올랐던 코스닥 열풍의 한편에서는 소비 열풍도 만만치 않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묻지 마' 발급된 신용카드 때문이었다. `당시 정부는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 카드사용

    을 장려하고 규제를 많이 풀어주고 소득공제혜택까지 만들었다. 길거리에 가판대를 펼쳐놓고 

    신용카드 발급을 남발했다. 당시 IMF로 억눌린 소비욕구를 자동차와 명품백으로 해소하는 것

    처럼 외제차와 명품백 소비가 늘었다. 당시에는 현금서비스와 카드론 소비도 많았다. 사람들은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인지도 모르고 마구 사용했고 그 마지막은 연체였다. 1997년 말 143만

    여명이었던 신용불량자가 2003년에는 372만 명까지 치솟았다. 이런 연체율 급증은 카드사의 위기

    로 이어진다. 당시 가장 많은 회원을 거느리고 있던 LG카드는 연체율급증으로 산업은행에 넘어갔

    다가  신한카드로 흡수되었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2008년 금융위기를 이 카드대란으로 비슷하게 

    미리 겪은 셈이 된 것이다. 

     

    결론 :

     

    이렇게 우리나라는 후진적인 경제구조로 인해 IMF라는 극약처방을 맞고 나서 긴 진통 후에 점점 

    성숙해 가는 선진 경제구조로 변모해 왔습니다. 많은 고통과 희생도 따랐지만 그 결과로 더 공평성

    과 효율성 그리고 건전성을 바탕으로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받는 경제모델로 성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정학적, 지경학적으로 특수한 위치에 있는 만큼 더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고 보여 집

    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헤쳐 나온 과정을 볼 때 충분히 감당해 내리라 보이며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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